최근 ‘비동의 강간죄(간음죄)’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도 강간죄 요건을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

여성신문 25-12-11 11:29 44 1
최근 ‘비동의 강간죄(간음죄)’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도 강간죄 요건을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경환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법원 내 연구회인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가 지난 5일 개최한 공개토론회 ‘2025년 성범죄 재판의 최신 쟁점들’에서 ‘성범죄 규율체계의 맥락에서 본 강간죄의 폭행·협박의 의미’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서 “강간죄, 유사 강간죄와 관련해 하루빨리 최협의설(최대한 협소하게 해석한다는 뜻)이 폐기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에서는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에 이르는 폭행 또는 협박이 존재해야 강간죄를 물을 수 있다. 이는 강간죄 성립 요건을 매우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설’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성계를 중심으로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 비동의 강간죄의 핵심이다.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 공개토론회에서 이경환 변호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협박에 관한 최협의설은 앞서 2023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폐기된 바 있다. 해당 사건은 피고인 A씨가 15살 사촌 여동생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1심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가했다고 판단,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A씨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볼 수 없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에 대해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폭행 또는 협박’을 최협의설에 기반해 해석한 기존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다만 해당 판결은 강제추행죄에 대해서만 판단을 했기 때문에 유사 강간죄나 강간죄의 ‘폭행 또는 협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또 유사 강간죄나 강간죄와 관련된 하급심 판결에서도 협의설을 적용한 사례와 최협의설을 적용한 사례가 동시에 나오는 등 혼재된 상황이라는 것이 이 변호사의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강간죄나 유사 강간죄가 문제된 하급심 판결들에서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고려해 협의설을 적용한 사례와 여전히 최협의설을 적용한 사례가 모두 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전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최협의설 유지 여부, 더 나아가 동의 기준 강간죄 개정 논의(비동의 강간죄 도입 논의)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사실상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죄를) 판단하고 있다”며 “이는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죄를 개정한다고 해서 실무상으로 판단하는데 혼선이 발생하거나 처벌 범위에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무는 계속 변화하는데 법원에서는 최협의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최협의라는 개념이 의미 있는 개념이고, 판단 기준인지 묻고 싶다. 일반 국민에게 최협의를 설명하는 것이 힘들뿐더러 사회적으로도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의문”이라며 “부자연스러운 최협의라는 개념보다 동의의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의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여기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이 같은 관점에서 강간죄, 유사 강간죄와 관련해 하루빨리 최협의설이 폐기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를 바란다”며 더 나아가 동의 기준의 강간죄 개정이라는 입법론적인 변화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 공개토론회에서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홍진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피해자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2005년 7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사실상 판례 변경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상 대법관과 하급심이 최협의의 폭행·협박설을 벗어나서 폭행·협박에 관한 판단을 해왔다 하더라도 법리적인 수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하급심과 수범자에게 폭행·협박의 기준선을 정확히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현장에서 축사를 통해 “현실에서 피해자가 용기 내 이야기를 해도 폭행이나 협박의 입증이라는 좁은 기준 속에서 피해자가 겪은 실제 공포와 저항 불가능한 상황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사례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술·약물 등으로 사실상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위계 관계로 인해 동의 여부를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려운 사건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정희 전 대법관(현 사법연수원 전임교수)은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부터 범여성계는 강간 규정이 협소하고 성범죄 관련성이 연속성 없이 분산 규정돼 법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며 “성폭력특별법의 제정으로 큰 발을 내딛었고 많은 분의 노력으로 꾸준히 처벌 강화뿐 아니라 처벌의 흠결을 보완하고 절차를 개선하는 진전이 이뤄졌다. 이제는 적어도 무엇이 강간인지 간명하게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 

댓글목록
  • 지구촌가족성폭력상담소 () 답변

    최근 ‘비동의 강간죄(간음죄)’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도 강간죄 요건을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경환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법원 내 연구회인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가 지난 5일 개최한 공개토론회 ‘2025년 성범죄 재판의 최신 쟁점들’에서 ‘성범죄 규율체계의 맥락에서 본 강간죄의 폭행·협박의 의미’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서 “강간죄, 유사 강간죄와 관련해 하루빨리 최협의설(최대한 협소하게 해석한다는 뜻)이 폐기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에서는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에 이르는 폭행 또는 협박이 존재해야 강간죄를 물을 수 있다. 이는 강간죄 성립 요건을 매우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설’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성계를 중심으로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 비동의 강간죄의 핵심이다.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 공개토론회에서 이경환 변호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협박에 관한 최협의설은 앞서 2023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폐기된 바 있다. 해당 사건은 피고인 A씨가 15살 사촌 여동생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1심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가했다고 판단,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A씨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볼 수 없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에 대해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폭행 또는 협박’을 최협의설에 기반해 해석한 기존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다만 해당 판결은 강제추행죄에 대해서만 판단을 했기 때문에 유사 강간죄나 강간죄의 ‘폭행 또는 협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또 유사 강간죄나 강간죄와 관련된 하급심 판결에서도 협의설을 적용한 사례와 최협의설을 적용한 사례가 동시에 나오는 등 혼재된 상황이라는 것이 이 변호사의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강간죄나 유사 강간죄가 문제된 하급심 판결들에서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고려해 협의설을 적용한 사례와 여전히 최협의설을 적용한 사례가 모두 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전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최협의설 유지 여부, 더 나아가 동의 기준 강간죄 개정 논의(비동의 강간죄 도입 논의)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사실상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죄를) 판단하고 있다”며 “이는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죄를 개정한다고 해서 실무상으로 판단하는데 혼선이 발생하거나 처벌 범위에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무는 계속 변화하는데 법원에서는 최협의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최협의라는 개념이 의미 있는 개념이고, 판단 기준인지 묻고 싶다. 일반 국민에게 최협의를 설명하는 것이 힘들뿐더러 사회적으로도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의문”이라며 “부자연스러운 최협의라는 개념보다 동의의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의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여기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이 같은 관점에서 강간죄, 유사 강간죄와 관련해 하루빨리 최협의설이 폐기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를 바란다”며 더 나아가 동의 기준의 강간죄 개정이라는 입법론적인 변화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 공개토론회에서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홍진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피해자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2005년 7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사실상 판례 변경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상 대법관과 하급심이 최협의의 폭행·협박설을 벗어나서 폭행·협박에 관한 판단을 해왔다 하더라도 법리적인 수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하급심과 수범자에게 폭행·협박의 기준선을 정확히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현장에서 축사를 통해 “현실에서 피해자가 용기 내 이야기를 해도 폭행이나 협박의 입증이라는 좁은 기준 속에서 피해자가 겪은 실제 공포와 저항 불가능한 상황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사례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술·약물 등으로 사실상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위계 관계로 인해 동의 여부를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려운 사건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정희 전 대법관(현 사법연수원 전임교수)은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부터 범여성계는 강간 규정이 협소하고 성범죄 관련성이 연속성 없이 분산 규정돼 법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며 “성폭력특별법의 제정으로 큰 발을 내딛었고 많은 분의 노력으로 꾸준히 처벌 강화뿐 아니라 처벌의 흠결을 보완하고 절차를 개선하는 진전이 이뤄졌다. 이제는 적어도 무엇이 강간인지 간명하게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

총신가정폭력상담소,지구촌가족성폭력상담소

전화문자카톡관리자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