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 어깨띠 둘러매고 거리 나선 이유
가장 심한 욕은 뭘까. 부모 욕이다. 아무리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자기 가족을 건드리면 참지 않는다. 부모와 가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하는 가장 소중한 존재로 인식된다.
이런 세상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족을 최우선시하는 가족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가해자가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수천 번 말해도 ‘에이 설마. 널 예뻐해서 그랬을 거야’라며 피해를 축소·은폐하기 일쑤였다. 지난 18일 〈민중의소리〉와 만난 친족 성폭력 피해자 명아·민지·푸른나비(활동명) 씨는 “피해를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말하지 못하도록 억압돼 있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는 최장 10년. 사회는 말하지 말라고 하는데, 법은 빨리 말하라고 한다. 이에 피해자들은 “피해 말하기까지 2~30년은 걸린다”라며 최근 공소시효 폐지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말하기에 나선 건 이례적이다. 이들은 “피해자 말의 무게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미투 사각지대’였던 친족 성폭력
시작은 푸른나비 씨였다. 2015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 생존자 자조 모임 ‘작은 말하기’에 참여할 때만 해도 10명 중 한두 명이었던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2017~18년에 8~90%까지 늘어났다. 그는 피해자들이 언제까지 작은 공간에 모여 울고만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푸른나비= “부모를 잘못 만난, 개인적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줄 알았다. 부모니까 용서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회 구조적 문제였더라. 정상 가족만을 목표로 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정 내 성폭력 문제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2018년 미투 운동이 촉발됐을 때 친족 성폭력 미투도 활성화될 줄 알았다는 푸른나비 씨다. 하지만 친족 성폭력은 미투의 사각지대로 남았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길래 그는 직접 광화문 광장에 섰다. 가족주의 사회를 향한 첫 번째 말하기였다. 2019년 피해자들의 직접 행동이 시작됐다. 피해자 고통만 부각해 친족 성폭력 문제를 다룬 시사프로그램에 분노한 사람들이 방송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 등을 열며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액션 공폐단단’의 활동이 시작됐다.
푸른나비 씨는 지난 2월부터 국회 앞에서 공소시효 폐지 1인 시위를 벌였다. 정기적으로 시위를 진행하자는 내부 의견에 공폐단단은 매주 마지막 토요일 정오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동안 왜 말하지 못했을까. 민지 씨는 자신의 피해를 범죄라고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7살 때 사촌 오빠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겪었다.
민지= “사촌오빠가 제게 한 비밀스럽고 야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알면 안 되는 비밀이었다. 저도 가담했다는 생각에 말하면 혼날 것 같았다. 고3 때 엄마에게 처음 말했다. 엄마는 이제 와서 어떻게 하냐고 말하더라. 그렇게 그냥 지냈다. 22살 때 성폭행 사건을 겪고 가해자를 고소하면서, 어린 시절 피해도 범죄라는 걸 알게 됐다. 아빠의 영향도 컸다. 아빠는 성기나 가슴을 만지고 깔깔 웃으며 장난이라고 했다. 엄마도 장난이라고 하더라. 저도 장난인 줄 알았다.”
명아 씨는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에게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어머니의 부재로 이미 ‘정상 가족’에서 벗어났던 명아 씨는 피해를 말했을 때 부딪혀야 할 정상 가족의 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명아=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이상한 애 취급받았다. 정상 가족에서 하나라도 허술하면 공격 대상이었다. 제가 피해를 말하면 ‘가족이 이상하니까 너도 이상하다’며 배척당할 것 같았다. 가족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감히’ 가족이 가해자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회 제도에 도전하는 것 같았다.”
피해자들이 가장 힘든 건 피해를 말했을 때 외면당하는 것이었다. 푸른나비 씨는 집안 모두가 아버지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푸른나비=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대가족의 장남이었던 아버지의 가해 사실을 모두가 묵인했다. ‘부끄러우니 말하지 말라’는 소리부터, ‘동생들이 버려질 수 있다’, ‘전생에 네가 죄를 지었다’, ‘여러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할 수 있었는데 (다행으로 알아라)’라는 말까지 들어봤다.”
명아= “여동생을 제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동생에게 충격을 줄 수 없어서 다 클 때까지 참았다. 아버지 외에도 동생, 친척, 할머니 할아버지 등과의 관계도 제겐 소중했다. 제 피해를 밝혔을 때 가족은 적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공동체를 잃을 수 없는 마음이 컸다. 가해자 편을 들어도 가족을 놓을 수 없었다. 가족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채우는 게 평생 이룰 수 없는 과업이다.”
푸른나비= “친족 성폭력 피해자에게 정서적 도움이 제일 필요하다. 무엇이든 시시콜콜 말할 수 있는 게 가족이다. 피해자들은 피해로 인한 고통보다 외로움과 고립감이 더 크다. 다같이 모여있을 땐 괜찮은데 혼자 있으면 근본적인 고립감이 밀려온다.”
명아= “막상 가족을 떠나면 가족들이 직장과 집으로 찾아와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집으로 돌아오라고 따라다니면서 강요한다. 정상 가족처럼 보이길 원한다.”
“10년 안에 말하라고?”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는 최장 10년이다. DNA 증거 등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있을 때 2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미성년자의 경우 성년이 된 이후 공소시효가 시작된다. 공소시효가 없는 경우는 피해자가 13살 미만일 때에 한정된다.
푸른나비= “저는 부모님을 용서하려고만 했다. 매일 2시간씩 기도하며 어렸을 때부터 제가 십자가 지고 희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만 잊으면 된다는 생각도 했다. 실제 피해 기간 10년 중 4년의 기억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기억들이 올라왔을 땐 3~40년이 지난 뒤였다. 말하기까지 50년이 걸렸다. 공소시효 10년은 말도 안 된다.”
명아= “피해를 말한다는 건 내가 사회적 약자가 된다는 것과 같다.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서른 살이면 직장생활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할 시기다. 한창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더 말을 못 한다.”
민지= “스무 살 이후면 경제적으로 독립한다고 생각하지만, 취업도 쉽게 안 되지 않나. 그동안 버텨온 세월이 있는데 스무 살이 된다고 바로 말하고 싶어질까.”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에 따르면, 친족 내 성폭력 피해를 상담소에 상담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린 경우는 55.2%(48건)였다. 상담소에 상담하기 전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49.4%(43건)였으나, 친족 성폭력 본인 상담(41건) 중 주변인에게 알렸으니 지지받지 못한 경우는 53.7%(22건)에 달했다.
‘나는 피해자다’ 어깨띠 둘러맨 피해자들
“확성기 대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억압돼 있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말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불쌍하고 우울하고 예민하고 모습을 꺼린 거란 피해자다움은 없었다. 피해자란 이름만 벗어나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명아= “시위할 때 ‘나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다’라는 어깨띠를 매고 다녔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피해자 그대로 당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쳐다보는 시선들이 너무 좋았다. 확성기에 대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동안 억압돼 있었다.”
명아= “각자 피켓을 만들어왔는데 다들 심각할 줄만 알았다. 그런데 하트도 그리고 반짝반짝 예쁘게 꾸며왔더라. 모임 이름을 ‘반짝반짝’으로 하고 싶을 정도였다. 진지한데 다들 너무 신나 보였다. 생존자들이 이렇게 신난 건 본 적이 없다. 말할 기회만 있다면 강하고 멋지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걸 느꼈다. 모두 정말 강하더라. 우리의 생존력으로 버틴 것이지 국가와 사회의 도움은 없었다.”
푸른나비=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골방에서 울기만 했었다. 요새 생존자들 만나면 ‘눈물이 물줄기처럼 흐르다가 강물처럼 만나서 이 땅을 바다처럼 덮자’고 말한다. 죽지 말고 살아서 함께 만나 반가워했으면 좋겠다. 지금이 저는 가장 행복하다. 어렸을 때보다 지금이 살아있는 것 같다. 이런 행복이 제겐 없을 줄 알았다.”
친족 성폭력 관련 공소시효 폐지 외에도 개선돼야 할 제도들이 많다.
명아= “성과 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당연하게 당당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폭력 생존자의 날이 제정됐으면 좋겠다. 어려서부터 성교육이 필요하다. 부모 교육 역시 중요하다. 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경제적 독립이다. 생활지원과 직업교육을 함께 해줘야 한다.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심리교육도 중요한데, 가장 효과가 좋은 건 자조 모임이다. 지금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 곳뿐인데, 각 지자체에서 의무적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 가해에 대해 친권 박탈과 함께 양형기준이 강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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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가족성폭력상담소 () 답변
가장 심한 욕은 뭘까. 부모 욕이다. 아무리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자기 가족을 건드리면 참지 않는다. 부모와 가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하는 가장 소중한 존재로 인식된다.
이런 세상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족을 최우선시하는 가족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가해자가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수천 번 말해도 ‘에이 설마. 널 예뻐해서 그랬을 거야’라며 피해를 축소·은폐하기 일쑤였다. 지난 18일 〈민중의소리〉와 만난 친족 성폭력 피해자 명아·민지·푸른나비(활동명) 씨는 “피해를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말하지 못하도록 억압돼 있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는 최장 10년. 사회는 말하지 말라고 하는데, 법은 빨리 말하라고 한다. 이에 피해자들은 “피해 말하기까지 2~30년은 걸린다”라며 최근 공소시효 폐지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말하기에 나선 건 이례적이다. 이들은 “피해자 말의 무게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미투 사각지대’였던 친족 성폭력
시작은 푸른나비 씨였다. 2015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 생존자 자조 모임 ‘작은 말하기’에 참여할 때만 해도 10명 중 한두 명이었던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2017~18년에 8~90%까지 늘어났다. 그는 피해자들이 언제까지 작은 공간에 모여 울고만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푸른나비= “부모를 잘못 만난, 개인적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줄 알았다. 부모니까 용서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회 구조적 문제였더라. 정상 가족만을 목표로 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정 내 성폭력 문제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2018년 미투 운동이 촉발됐을 때 친족 성폭력 미투도 활성화될 줄 알았다는 푸른나비 씨다. 하지만 친족 성폭력은 미투의 사각지대로 남았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길래 그는 직접 광화문 광장에 섰다. 가족주의 사회를 향한 첫 번째 말하기였다. 2019년 피해자들의 직접 행동이 시작됐다. 피해자 고통만 부각해 친족 성폭력 문제를 다룬 시사프로그램에 분노한 사람들이 방송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 등을 열며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액션 공폐단단’의 활동이 시작됐다.
푸른나비 씨는 지난 2월부터 국회 앞에서 공소시효 폐지 1인 시위를 벌였다. 정기적으로 시위를 진행하자는 내부 의견에 공폐단단은 매주 마지막 토요일 정오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피해자 입을 닫게 한 ‘정상 가족’ 프레임
그동안 왜 말하지 못했을까. 민지 씨는 자신의 피해를 범죄라고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7살 때 사촌 오빠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겪었다.
민지= “사촌오빠가 제게 한 비밀스럽고 야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알면 안 되는 비밀이었다. 저도 가담했다는 생각에 말하면 혼날 것 같았다. 고3 때 엄마에게 처음 말했다. 엄마는 이제 와서 어떻게 하냐고 말하더라. 그렇게 그냥 지냈다. 22살 때 성폭행 사건을 겪고 가해자를 고소하면서, 어린 시절 피해도 범죄라는 걸 알게 됐다. 아빠의 영향도 컸다. 아빠는 성기나 가슴을 만지고 깔깔 웃으며 장난이라고 했다. 엄마도 장난이라고 하더라. 저도 장난인 줄 알았다.”
명아 씨는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에게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어머니의 부재로 이미 ‘정상 가족’에서 벗어났던 명아 씨는 피해를 말했을 때 부딪혀야 할 정상 가족의 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명아=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이상한 애 취급받았다. 정상 가족에서 하나라도 허술하면 공격 대상이었다. 제가 피해를 말하면 ‘가족이 이상하니까 너도 이상하다’며 배척당할 것 같았다. 가족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감히’ 가족이 가해자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회 제도에 도전하는 것 같았다.”
피해자들이 가장 힘든 건 피해를 말했을 때 외면당하는 것이었다. 푸른나비 씨는 집안 모두가 아버지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푸른나비=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대가족의 장남이었던 아버지의 가해 사실을 모두가 묵인했다. ‘부끄러우니 말하지 말라’는 소리부터, ‘동생들이 버려질 수 있다’, ‘전생에 네가 죄를 지었다’, ‘여러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할 수 있었는데 (다행으로 알아라)’라는 말까지 들어봤다.”
피해를 말한다는 건 곧 가족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이었다. 가해자 한 사람뿐 아니라 모든 가족이 내게 등 돌릴 수 있다는 각오까지 해야 했다. 가해자를 편들고 자신을 탓하는 가족이라도 연을 끊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명아= “여동생을 제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동생에게 충격을 줄 수 없어서 다 클 때까지 참았다. 아버지 외에도 동생, 친척, 할머니 할아버지 등과의 관계도 제겐 소중했다. 제 피해를 밝혔을 때 가족은 적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공동체를 잃을 수 없는 마음이 컸다. 가해자 편을 들어도 가족을 놓을 수 없었다. 가족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채우는 게 평생 이룰 수 없는 과업이다.”
푸른나비= “친족 성폭력 피해자에게 정서적 도움이 제일 필요하다. 무엇이든 시시콜콜 말할 수 있는 게 가족이다. 피해자들은 피해로 인한 고통보다 외로움과 고립감이 더 크다. 다같이 모여있을 땐 괜찮은데 혼자 있으면 근본적인 고립감이 밀려온다.”
명아= “막상 가족을 떠나면 가족들이 직장과 집으로 찾아와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집으로 돌아오라고 따라다니면서 강요한다. 정상 가족처럼 보이길 원한다.”
“10년 안에 말하라고?”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는 최장 10년이다. DNA 증거 등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있을 때 2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미성년자의 경우 성년이 된 이후 공소시효가 시작된다. 공소시효가 없는 경우는 피해자가 13살 미만일 때에 한정된다.
피해자들은 친족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피해 사실을 성인이 된다고 바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30살 이내에 경제적 독립을 완전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결혼 등 때문에 오히려 더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는 점도 지적됐다.
푸른나비= “저는 부모님을 용서하려고만 했다. 매일 2시간씩 기도하며 어렸을 때부터 제가 십자가 지고 희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만 잊으면 된다는 생각도 했다. 실제 피해 기간 10년 중 4년의 기억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기억들이 올라왔을 땐 3~40년이 지난 뒤였다. 말하기까지 50년이 걸렸다. 공소시효 10년은 말도 안 된다.”
명아= “피해를 말한다는 건 내가 사회적 약자가 된다는 것과 같다.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서른 살이면 직장생활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할 시기다. 한창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더 말을 못 한다.”
민지= “스무 살 이후면 경제적으로 독립한다고 생각하지만, 취업도 쉽게 안 되지 않나. 그동안 버텨온 세월이 있는데 스무 살이 된다고 바로 말하고 싶어질까.”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에 따르면, 친족 내 성폭력 피해를 상담소에 상담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린 경우는 55.2%(48건)였다. 상담소에 상담하기 전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49.4%(43건)였으나, 친족 성폭력 본인 상담(41건) 중 주변인에게 알렸으니 지지받지 못한 경우는 53.7%(22건)에 달했다.
‘나는 피해자다’ 어깨띠 둘러맨 피해자들
“확성기 대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억압돼 있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말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불쌍하고 우울하고 예민하고 모습을 꺼린 거란 피해자다움은 없었다. 피해자란 이름만 벗어나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명아= “시위할 때 ‘나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다’라는 어깨띠를 매고 다녔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피해자 그대로 당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쳐다보는 시선들이 너무 좋았다. 확성기에 대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동안 억압돼 있었다.”
민지= “1인 시위가 지루하고 힘들 줄 알았는데 함께 목소리 내는 경험이 좋았다. 피켓을 바라봐주고 설명지를 받아주는 시민들이 생기면서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국회 앞에 시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서로 이슈를 알아가고 응원했다. 무언가를 나누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당장 이뤄지지 않아도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명아= “각자 피켓을 만들어왔는데 다들 심각할 줄만 알았다. 그런데 하트도 그리고 반짝반짝 예쁘게 꾸며왔더라. 모임 이름을 ‘반짝반짝’으로 하고 싶을 정도였다. 진지한데 다들 너무 신나 보였다. 생존자들이 이렇게 신난 건 본 적이 없다. 말할 기회만 있다면 강하고 멋지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걸 느꼈다. 모두 정말 강하더라. 우리의 생존력으로 버틴 것이지 국가와 사회의 도움은 없었다.”
푸른나비=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골방에서 울기만 했었다. 요새 생존자들 만나면 ‘눈물이 물줄기처럼 흐르다가 강물처럼 만나서 이 땅을 바다처럼 덮자’고 말한다. 죽지 말고 살아서 함께 만나 반가워했으면 좋겠다. 지금이 저는 가장 행복하다. 어렸을 때보다 지금이 살아있는 것 같다. 이런 행복이 제겐 없을 줄 알았다.”
친족 성폭력 관련 공소시효 폐지 외에도 개선돼야 할 제도들이 많다.
명아= “성과 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당연하게 당당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폭력 생존자의 날이 제정됐으면 좋겠다. 어려서부터 성교육이 필요하다. 부모 교육 역시 중요하다. 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경제적 독립이다. 생활지원과 직업교육을 함께 해줘야 한다.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심리교육도 중요한데, 가장 효과가 좋은 건 자조 모임이다. 지금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 곳뿐인데, 각 지자체에서 의무적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 가해에 대해 친권 박탈과 함께 양형기준이 강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