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사건 절반, 성폭력·폭행으로 이어진다
"죽어라!"
지난해 5월 4일 오전 9시50분.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흉기를 든 남성이 여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온몸을 여러 차례 찔린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피살 당시 59세였던 이 여성은 가해자(44)에게 10년 동안 끈질긴 스토킹에 시달려온 피해자였다.
피해자는 동네에서 작은 고깃집을 운영하던 사장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 아내였다. 그런 피해자를 고깃집 단골손님인 가해자는 10년간 스토킹하며 집착했다. 경찰에 신고해도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가 숨지기 전 석 달 치 통화 목록에는 가해자에게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려온 100여 통의 전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은 가해자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판결이) 남은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분노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스토킹은 피해자의 일상, 나아가 생명까지 위협하고 파괴하는 심각한 범죄이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 사회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스토킹을 형사 처벌할 법마저 없었다. 오는 10월에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돼 스토킹 범죄를 징역형으로 처벌할 길이 열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근절할 수 있도록 법규와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드러나는 법규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한편, 타인에 대한 부지불식중의 행동이 스토킹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도록 계도하는 작업, 스토킹 근절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살인·성폭력·상해·주거침입…스토킹은 '범죄 종합세트'
열여덟 살 최모 양은 2019년 4월 17일 새벽 화재 연기로 가득 찬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죽었다. 사인은 자상(刺傷). 날카로운 흉기에 찔려서였다. 범인은 안인득(44). 최 양을 반년 넘게 스토킹한 스토커였다.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으로 최 양을 포함해 5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22명의 주민이 죽거나 다친 끔찍한 사건은 예고 없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전 안인득의 최 양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이라는 '경고 신호'가 있었다. 최 양 가족은 사건 이전 경찰에 수차례나 신고했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안인득의 스토킹이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여져 형사 처벌을 받았다면 이러한 참혹한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스토킹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경계의 수위를 높여야 하는 것은 스토킹이 피해자에 대한 단순한 집착과 접근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킹은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 심지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흉악하고 위험한 범죄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2∼2018년 전국범죄피해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스토킹 피해자가 성범죄를 당할 가능성은 스토킹 피해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해 13.3배에 달했다.
또한, 한민경 경찰대 교수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선고된 법원의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스토킹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사건 148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강간이나 상해, 폭행, 협박, 주거침입, 업무방해 등 다양한 신체적 폭력이나 성폭력 범죄를 동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토킹이 상해·폭행 등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진 경우는 148건 중 53건(35.8%), 성폭력으로 이어진 경우는 42건(28.4%)에 달했다.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이 모두 있었던 경우도 18건(12.2%)이나 됐다.
이들 스토킹 사건은 1건당 평균 4.6개의 처벌 규정이 함께 적용됐다.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여러 유형의 범죄를 복합적으로 저질렀다는 뜻이다.
스토킹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한 교수는 "스토킹은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극히 심각한 범죄"라며 "해외 연구 등을 보면 통상 살인사건 중 30% 비율로 범행 이전 스토킹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해자들은) 강한 집착과 소유욕을 스토킹이라는 형태로 상대방에게 드러낸다"며 "자신이 도저히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알게 된 피해자를 스토킹하다가 결국 피해자와 그 여동생, 어머니까지 살해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김태현(24)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태현은 두 달에 걸쳐 스토킹을 벌였고, 피해자가 연락을 차단하고 만나주지 않자 살인이라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스토킹이 실제 범죄로 이어지더라도 많은 가해자가 중형을 피할 수 있었다. 스토킹 그 자체를 심각한 범죄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가해자의 범죄를 잘게 쪼갠 후 처벌 법규를 적용할 수 있는 부분만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스토킹, 폭행 등을 저지른 가해자 가운데 48.6%가 집행유예, 벌금형 등을 통해 실형을 피할 수 있었다.
곽 교수는 "스토킹은 더 큰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이를 알려주는 '전조(前兆)'와 같은 범죄"라며 "스토킹을 개인 간 문제로 치부하는 등 가해자 중심으로 스토킹 범죄를 바라본 우리 사회의 인식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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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가족성폭력상담소 () 답변
"죽어라!"
지난해 5월 4일 오전 9시50분.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흉기를 든 남성이 여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온몸을 여러 차례 찔린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피살 당시 59세였던 이 여성은 가해자(44)에게 10년 동안 끈질긴 스토킹에 시달려온 피해자였다.
피해자는 동네에서 작은 고깃집을 운영하던 사장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 아내였다. 그런 피해자를 고깃집 단골손님인 가해자는 10년간 스토킹하며 집착했다. 경찰에 신고해도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가 숨지기 전 석 달 치 통화 목록에는 가해자에게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려온 100여 통의 전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은 가해자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판결이) 남은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분노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스토킹은 피해자의 일상, 나아가 생명까지 위협하고 파괴하는 심각한 범죄이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 사회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스토킹을 형사 처벌할 법마저 없었다. 오는 10월에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돼 스토킹 범죄를 징역형으로 처벌할 길이 열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근절할 수 있도록 법규와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드러나는 법규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한편, 타인에 대한 부지불식중의 행동이 스토킹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도록 계도하는 작업, 스토킹 근절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살인·성폭력·상해·주거침입…스토킹은 '범죄 종합세트'
열여덟 살 최모 양은 2019년 4월 17일 새벽 화재 연기로 가득 찬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죽었다. 사인은 자상(刺傷). 날카로운 흉기에 찔려서였다. 범인은 안인득(44). 최 양을 반년 넘게 스토킹한 스토커였다.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으로 최 양을 포함해 5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22명의 주민이 죽거나 다친 끔찍한 사건은 예고 없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전 안인득의 최 양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이라는 '경고 신호'가 있었다. 최 양 가족은 사건 이전 경찰에 수차례나 신고했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안인득의 스토킹이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여져 형사 처벌을 받았다면 이러한 참혹한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스토킹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경계의 수위를 높여야 하는 것은 스토킹이 피해자에 대한 단순한 집착과 접근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킹은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 심지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흉악하고 위험한 범죄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2∼2018년 전국범죄피해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스토킹 피해자가 성범죄를 당할 가능성은 스토킹 피해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해 13.3배에 달했다.
또한, 한민경 경찰대 교수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선고된 법원의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스토킹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사건 148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강간이나 상해, 폭행, 협박, 주거침입, 업무방해 등 다양한 신체적 폭력이나 성폭력 범죄를 동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토킹이 상해·폭행 등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진 경우는 148건 중 53건(35.8%), 성폭력으로 이어진 경우는 42건(28.4%)에 달했다.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이 모두 있었던 경우도 18건(12.2%)이나 됐다.
이들 스토킹 사건은 1건당 평균 4.6개의 처벌 규정이 함께 적용됐다.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여러 유형의 범죄를 복합적으로 저질렀다는 뜻이다.
스토킹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한 교수는 "스토킹은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극히 심각한 범죄"라며 "해외 연구 등을 보면 통상 살인사건 중 30% 비율로 범행 이전 스토킹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해자들은) 강한 집착과 소유욕을 스토킹이라는 형태로 상대방에게 드러낸다"며 "자신이 도저히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알게 된 피해자를 스토킹하다가 결국 피해자와 그 여동생, 어머니까지 살해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김태현(24)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태현은 두 달에 걸쳐 스토킹을 벌였고, 피해자가 연락을 차단하고 만나주지 않자 살인이라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스토킹이 실제 범죄로 이어지더라도 많은 가해자가 중형을 피할 수 있었다. 스토킹 그 자체를 심각한 범죄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가해자의 범죄를 잘게 쪼갠 후 처벌 법규를 적용할 수 있는 부분만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스토킹, 폭행 등을 저지른 가해자 가운데 48.6%가 집행유예, 벌금형 등을 통해 실형을 피할 수 있었다.
곽 교수는 "스토킹은 더 큰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이를 알려주는 '전조(前兆)'와 같은 범죄"라며 "스토킹을 개인 간 문제로 치부하는 등 가해자 중심으로 스토킹 범죄를 바라본 우리 사회의 인식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