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성폭력 피해아동에게 "원래 나쁜 아이"..법정에서도 2차 가해
"가해자의 관심을 끌려다 실패해서 복수심에 성폭력 당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재혼부모의 성관계를 목격하고 이야기를 지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는 또래보다 성숙한 편, (가해자를) 신랑이라 부르며 좋아하고 따랐다."
- 아동성폭력 재판 증인 신문 중, 피고인 변호인 측 발언-
실제 성폭력 피해 재판에서 피해자를 향해 쏟아진 발언들입니다. 피해자는 여덟 살 아동.
7개월 동안 태권도 사범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결국, 가해자는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재판에서의 2차 가해는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 가해자 무죄 증명보다, 피해자 "나쁜 아이다" 공격
재판에선 성폭력 사건 자체보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를 공격하는 신문이 더 많이 이뤄졌습니다. 가해자 측 변호인은 가해자의 '무죄'를 증명하기보다, 피해자가 '나쁜 아이다'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피해자는 원래 "별난 아이", "가해자의 관심을 끌려다 실패해서 복수심에 거짓말을 한다."와 같은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다음은 가해자 측 변호인이, 가해자의 여자친구를 불러 신문한 실제 재판의 한 부분입니다.
가해자 측 변호인 : 피고인(가해가)이 증인에게 말해준 00(피해자)라는 아이는 어땠나요?
증인(가해자 여자친구) : 피고인을 신랑이라 부르며 좋아하고 따랐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번 거짓말해서 혼낸 적이 있는데 관심받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것 같았고, 싸우지 않았는데 싸웠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가해자 측 변호인 : 거짓말을 해서 관심 끌기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에 실패하자 복수심이나 보복감으로 이런 거짓말을 했다고 볼 수도 있는 건가요?
증인 : 네
■ 부모 재혼 사실 들추며, 피해자 공격
가해자 측 변호인은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재혼한 사실까지 거론하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친아빠도 아니니까, 재혼한 아빠로부터 그런 걸(성관계) 보고 봤을 수도 있다."
엄마의 양육 태도도 문제 삼아 공격했습니다. "엄마가 애를 맡겨 놓고 잘 놀러 나간다. 그래서 그 사이에 새아빠가 그런 것을 상상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재판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가해자는 동네에 이런 말들을 사실인 양 소문을 냈고, 피해자와 가족들은 도망치듯 동네를 떠나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마치 자신이 전과자가 된 것 같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피해자 변호사가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몇 번이나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성폭력 피해자 80%, 재판에서 2차 피해 경험
비단 이 아이뿐만이 아닙니다. 부산의 성폭력 피해 지원단체인 '미투위드유' 지원단이 지난해 열린 성폭력 재판 157건을 모니터링한 결과, 성폭력 피해자의 80% 이상이 재판에서 이러한 2차 피해를 경험했습니다. 그중 60%가 가해자 변호사의 피해자 증인신문 과정에서 피해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피해자의 과거 성생활이나 옷차림, 음주, 흡연 경험 등을 근거로 대며 '순수한' 피해자라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이혼을 여러 번 했는데 혹은 성관계 경험이 많은데 어떻게 순결한 피해자일 수가 있느냐"와 같은 신문이 실제 재판에서 이뤄졌습니다.
또, 부모나 본인의 이혼 사실 등 피해와 상관없는 사건을 들추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 사실, 무리한 다이어트를 해 예민하다는 사실들을 이야기하며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이용해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수법입니다.
■ 성폭력 피해자 보호법, "있지만 없다?"
이런 2차 가해가 버젓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현행 성폭력 피해자 보호 법률이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폭력범죄 특례법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권고일 뿐, 강제성이나 처벌 조항이 없어 사실상 재판에서 효력이 없습니다.
변호사와 판사의 '인권 감수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영국처럼, 구체적으로 '증인신문 제한 범위'를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이들 국가는 '과거 성적 행위에 관한 증거'나 '임신이나 성병 등 특정 성적 이력'은 증거로 이용될 수 없다고 법률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호주와 미국에서는 성폭력 재판에 대한 '법관용 실무 지침서'까지 만들어 법정에서의 2차 가해를 방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4년 전, '성 이력 증거 능력 배제'와 관련한 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해당 법률에 대해 검토했지만, 법안 통과에 신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검토문 중 일부입니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성 이력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있어 여러 증거 중 하나의 증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에도 이를 원천적으로 증거로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수사기관이나 재판기관의 실체적 진실 발견 수단을 지나치게 축소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왜곡된 인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사건과 관계없는 피해자의 사생활을 이유로 '피해자답지 않다'며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고 배척하는 사회.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피해자들이 재판을 포기할 가능성이 커지고, 성폭력을 신고하길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렵게 법정에 설 용기를 낸 피해자들이 2차 가해를 당하지 않고, 재판을 포기하지 않도록 할 법·제도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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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관심을 끌려다 실패해서 복수심에 성폭력 당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재혼부모의 성관계를 목격하고 이야기를 지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는 또래보다 성숙한 편, (가해자를) 신랑이라 부르며 좋아하고 따랐다."
- 아동성폭력 재판 증인 신문 중, 피고인 변호인 측 발언-
실제 성폭력 피해 재판에서 피해자를 향해 쏟아진 발언들입니다. 피해자는 여덟 살 아동.
7개월 동안 태권도 사범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결국, 가해자는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재판에서의 2차 가해는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 가해자 무죄 증명보다, 피해자 "나쁜 아이다" 공격
재판에선 성폭력 사건 자체보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를 공격하는 신문이 더 많이 이뤄졌습니다. 가해자 측 변호인은 가해자의 '무죄'를 증명하기보다, 피해자가 '나쁜 아이다'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피해자는 원래 "별난 아이", "가해자의 관심을 끌려다 실패해서 복수심에 거짓말을 한다."와 같은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다음은 가해자 측 변호인이, 가해자의 여자친구를 불러 신문한 실제 재판의 한 부분입니다.
가해자 측 변호인 : 피고인(가해가)이 증인에게 말해준 00(피해자)라는 아이는 어땠나요?
증인(가해자 여자친구) : 피고인을 신랑이라 부르며 좋아하고 따랐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번 거짓말해서 혼낸 적이 있는데 관심받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것 같았고, 싸우지 않았는데 싸웠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가해자 측 변호인 : 거짓말을 해서 관심 끌기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에 실패하자 복수심이나 보복감으로 이런 거짓말을 했다고 볼 수도 있는 건가요?
증인 : 네
■ 부모 재혼 사실 들추며, 피해자 공격
가해자 측 변호인은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재혼한 사실까지 거론하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친아빠도 아니니까, 재혼한 아빠로부터 그런 걸(성관계) 보고 봤을 수도 있다."
엄마의 양육 태도도 문제 삼아 공격했습니다. "엄마가 애를 맡겨 놓고 잘 놀러 나간다. 그래서 그 사이에 새아빠가 그런 것을 상상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재판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가해자는 동네에 이런 말들을 사실인 양 소문을 냈고, 피해자와 가족들은 도망치듯 동네를 떠나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마치 자신이 전과자가 된 것 같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피해자 변호사가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몇 번이나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성폭력 피해자 80%, 재판에서 2차 피해 경험
비단 이 아이뿐만이 아닙니다. 부산의 성폭력 피해 지원단체인 '미투위드유' 지원단이 지난해 열린 성폭력 재판 157건을 모니터링한 결과, 성폭력 피해자의 80% 이상이 재판에서 이러한 2차 피해를 경험했습니다. 그중 60%가 가해자 변호사의 피해자 증인신문 과정에서 피해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피해자의 과거 성생활이나 옷차림, 음주, 흡연 경험 등을 근거로 대며 '순수한' 피해자라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이혼을 여러 번 했는데 혹은 성관계 경험이 많은데 어떻게 순결한 피해자일 수가 있느냐"와 같은 신문이 실제 재판에서 이뤄졌습니다.
또, 부모나 본인의 이혼 사실 등 피해와 상관없는 사건을 들추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 사실, 무리한 다이어트를 해 예민하다는 사실들을 이야기하며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이용해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수법입니다.
■ 성폭력 피해자 보호법, "있지만 없다?"
이런 2차 가해가 버젓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현행 성폭력 피해자 보호 법률이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폭력범죄 특례법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권고일 뿐, 강제성이나 처벌 조항이 없어 사실상 재판에서 효력이 없습니다.
변호사와 판사의 '인권 감수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영국처럼, 구체적으로 '증인신문 제한 범위'를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이들 국가는 '과거 성적 행위에 관한 증거'나 '임신이나 성병 등 특정 성적 이력'은 증거로 이용될 수 없다고 법률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호주와 미국에서는 성폭력 재판에 대한 '법관용 실무 지침서'까지 만들어 법정에서의 2차 가해를 방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4년 전, '성 이력 증거 능력 배제'와 관련한 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해당 법률에 대해 검토했지만, 법안 통과에 신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검토문 중 일부입니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성 이력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있어 여러 증거 중 하나의 증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에도 이를 원천적으로 증거로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수사기관이나 재판기관의 실체적 진실 발견 수단을 지나치게 축소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왜곡된 인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사건과 관계없는 피해자의 사생활을 이유로 '피해자답지 않다'며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고 배척하는 사회.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피해자들이 재판을 포기할 가능성이 커지고, 성폭력을 신고하길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렵게 법정에 설 용기를 낸 피해자들이 2차 가해를 당하지 않고, 재판을 포기하지 않도록 할 법·제도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