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으려면
시작부터 끝까지 총 255페이지.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도 있는 양이지만, 이 책을 한 번에 읽어 내려간 사람은 드물다. 김영서 작가의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이야기다. 작가가 경험한 9년간의 친족성폭력을 고스란히 기록한 이 책을 읽은 작가의 지인은 일주일간 몸이 아파 앓아누웠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이 힘들었다고 한다. 영서씨의 피해 사실이 낱낱이 담긴 책을 본 독자들도 두세 번 책을 덮었다고 고백한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을 통해 김영서 작가와 여든셋의 독자 김종진씨, 이 책으로 경찰들을 가르치는 경찰교육원 고지연 교수,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20대 용훈씨가 만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네 사람이 폭력의 기억이 담긴 책 하나로 한자리에 모였다.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을 통해 김영서 작가(왼쪽)와 세 명의 독자가 한자리에 모여 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언젠가 폭력의 경험을 툭하고 털어놓아도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놀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석예다 PD
“너무…놀랐어요. 놀랐어요. 어쩌면 내 얘기를 쓴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피해를 계속 당하셨어요. 한 번은 어머님이 안방으로 피해 오셨어요. 웬일인가 하고 봤더니 아버님이 폭력을 행사하니까 저희들 방으로 오셨지요. 아…,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은 우리 어머니는 음독을 하시고 자살하셨어요. (책을 읽으며) 어머니 생각이 나서 괴로웠습니다.”
초등학교에서 35년간 교편을 잡았던 김종진씨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을 겪었다.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에 주저앉는 어머니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였다. 맞을까 봐 무서웠고,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같은 어른이 될까 봐 더 두려웠다. 독서 모임에서 영서씨의 책을 접하면서 폭력의 기억은 더 선명해졌다. 영서씨를 만나고 싶어 북 콘서트를 찾아갔다고 한다. 영서씨를 만난 그는 눈물을 흘리며 과거의 기억을 고백했다. 그리고 영서씨에게 “멋있다”고 말해주었다.
영서씨가 쓰는 고통을 감내하며 폭력의 시간을 적어 내려간 것은 “더 넓은 세상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그렇게 되기까지 26년이 걸렸다. 가해자인 아버지가 죽은 뒤 1년이 지나고 겨우 제 목소리로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
![성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으려면[플랫]](http://img.khan.co.kr/news/2020/12/10/2020120801000971700076973.jpg)
“가해자인 친부가 죽고 나서 1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지금 겨우 제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사람은 죽은 지 몰라도, 그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중에서
“제가 2013년 한 지역에서 강의를 하는데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하시면서 ‘너는 부모가 한 부끄러운 짓을 왜 창피한 줄 모르고 이렇게 떠들고 다니느냐’고 고함을 쳤어요. 그분과 비슷한 세대를 사셨을텐데 (김종진씨는)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저한테는 굉장히 감동이고, 감사하기도 해요. 우리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퍼뜨려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김종진 할아버님을 통해서 많이 느꼈어요.”(김영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요구되는 ‘피해자다움’은 폭력의 피해를 말할 수 없게 만든다.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사기, 강도 등 어떤 범죄도 피해자에게 스스로 부러워하는 마음이라는 뜻의 수치심을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범죄는 없다. 고 교수는 “유일하게 성범죄에만 수치심을 피해자에게 전가시킨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은 집 안에서 일어나는데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고 하니) 스스로 부끄러우니까 밖에 가서 말할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사실은 이 범죄가 은폐되고 숨겨지는 것이지요.”(김영서)
용훈은 책보다 영서씨를 먼저 알게 됐다.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이 많은 용훈에게 친구가 성폭력피해 상담가인 영서씨를 소개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렇고, 읽고 나서도 그렇고 머리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고민했고, 결국 마주하기로 했죠.” 용훈은 책을 읽은 후 여성인권상담소에서 디지털 성폭력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며 폭력 예방을 위해 나름의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가 더 이상 숨지 않고, 가해자들에게 온전히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경찰인재개발원에서 현장 경찰관들을 교육하는 고지연 경찰교육원 교수는 처음에는 공부를 하려고 영서 작가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형사로서 15년간 사건 현장에 있었지만 피해자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 사건 처리를 잘 하고도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있어요. 그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고 교수는 현장 경찰관들에게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읽고 서평을 쓰라는 과제를 주기도 한다. “가정폭력이나 친밀한 관계 안에서의 폭력은 굉장히 오랫동안 침윤이 되기 때문에 밖에서 (사건을) 보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왜 저렇게 대응을 못 하지?’ ‘가출하면 되지 않아?’ ‘아니, 엄마는 뭐 했어?’ (피해자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책에서 제대로 보여주는 정수는 ‘나는 점점 그렇게 물건이 되어 갔다’는 문장이었어요.”
![성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으려면[플랫]](http://img.khan.co.kr/news/2020/12/10/2020120801000971700076972.jpg)
“나는 지금 살아 있지 않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물건이다. 나는 영서가 아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순간에는.”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중에서
안전한 장소. 경찰 신고. 신분증과 신용카드, 통장 그리고 갈아입을 옷. 비상금.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는 이 4가지 항목을 확보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막상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준비하기 쉽지 않다. 영서씨는 “집을 나올 때 신분증, 통장, 도장, 2만 원 정도의 현금을 들고 나왔지만 갈아입을 옷도 없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피해자에게) 안전한 장소가 있을까 싶지만 사실 가해자가 없는, 가해자와 분리되면 모든 공간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고 했다.
가족 내 폭력과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현행법은 법원의 임시조치로만 분리가 가능하다. 현장에서 경찰이 직접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긴급임시조치가 마련돼 있으나 가정폭력특례법에 따르면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하더라도 과태료 처분에 그쳐 범행 재발의 우려가 높다는 지적을 받는다.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은 전국에 66개소(2019년 1월 기준)가 있지만 임시 쉼터의 경우 최대 3일까지 머물 수 있는 정도다. 자립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사업 운영실적 조사에 따르면 보호시설 이용자 1900명 중 714명인 37.6%는 쉼터 퇴소와 함께 다시 원가정으로 복귀한다. 여성 폭력 피해자에 대한 주거지원은 전국에 314호가 있으나, 주거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은 자는 매년 불과 1~2명으로 극히 일부에게만 제공되고 있다. 고 교수는 “가해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보호가 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폭력 피해자들 중에 용기 내서 가출을 했는데, 안 좋은 사람만 계속 만났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인식을 주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계속 늘어나는 것. 그 역할을 우리가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폭력의 경험을 툭하고 털어놓아도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놀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김영서)
“코로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일 거예요. 나만 잘 살아서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요. 이 사람(피해자)이 안전하고, 살 수 있어야 나 또한 안전하다는 것일 겁니다.”(고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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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가족성폭력상담소 () 답변
시작부터 끝까지 총 255페이지.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도 있는 양이지만, 이 책을 한 번에 읽어 내려간 사람은 드물다. 김영서 작가의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이야기다. 작가가 경험한 9년간의 친족성폭력을 고스란히 기록한 이 책을 읽은 작가의 지인은 일주일간 몸이 아파 앓아누웠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이 힘들었다고 한다. 영서씨의 피해 사실이 낱낱이 담긴 책을 본 독자들도 두세 번 책을 덮었다고 고백한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을 통해 김영서 작가와 여든셋의 독자 김종진씨, 이 책으로 경찰들을 가르치는 경찰교육원 고지연 교수,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20대 용훈씨가 만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네 사람이 폭력의 기억이 담긴 책 하나로 한자리에 모였다.
?[유튜브]가족의 폭력이 대물림 되지 않으려면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을 통해 김영서 작가(왼쪽)와 세 명의 독자가 한자리에 모여 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언젠가 폭력의 경험을 툭하고 털어놓아도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놀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석예다 PD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을 통해 김영서 작가(왼쪽)와 세 명의 독자가 한자리에 모여 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언젠가 폭력의 경험을 툭하고 털어놓아도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놀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석예다 PD
“너무…놀랐어요. 놀랐어요. 어쩌면 내 얘기를 쓴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피해를 계속 당하셨어요. 한 번은 어머님이 안방으로 피해 오셨어요. 웬일인가 하고 봤더니 아버님이 폭력을 행사하니까 저희들 방으로 오셨지요. 아…,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은 우리 어머니는 음독을 하시고 자살하셨어요. (책을 읽으며) 어머니 생각이 나서 괴로웠습니다.”
초등학교에서 35년간 교편을 잡았던 김종진씨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을 겪었다.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에 주저앉는 어머니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였다. 맞을까 봐 무서웠고,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같은 어른이 될까 봐 더 두려웠다. 독서 모임에서 영서씨의 책을 접하면서 폭력의 기억은 더 선명해졌다. 영서씨를 만나고 싶어 북 콘서트를 찾아갔다고 한다. 영서씨를 만난 그는 눈물을 흘리며 과거의 기억을 고백했다. 그리고 영서씨에게 “멋있다”고 말해주었다.
영서씨가 쓰는 고통을 감내하며 폭력의 시간을 적어 내려간 것은 “더 넓은 세상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그렇게 되기까지 26년이 걸렸다. 가해자인 아버지가 죽은 뒤 1년이 지나고 겨우 제 목소리로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
성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으려면[플랫]
“가해자인 친부가 죽고 나서 1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지금 겨우 제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사람은 죽은 지 몰라도, 그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중에서
“제가 2013년 한 지역에서 강의를 하는데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하시면서 ‘너는 부모가 한 부끄러운 짓을 왜 창피한 줄 모르고 이렇게 떠들고 다니느냐’고 고함을 쳤어요. 그분과 비슷한 세대를 사셨을텐데 (김종진씨는)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저한테는 굉장히 감동이고, 감사하기도 해요. 우리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퍼뜨려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김종진 할아버님을 통해서 많이 느꼈어요.”(김영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요구되는 ‘피해자다움’은 폭력의 피해를 말할 수 없게 만든다.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사기, 강도 등 어떤 범죄도 피해자에게 스스로 부러워하는 마음이라는 뜻의 수치심을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범죄는 없다. 고 교수는 “유일하게 성범죄에만 수치심을 피해자에게 전가시킨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은 집 안에서 일어나는데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고 하니) 스스로 부끄러우니까 밖에 가서 말할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사실은 이 범죄가 은폐되고 숨겨지는 것이지요.”(김영서)
용훈은 책보다 영서씨를 먼저 알게 됐다.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이 많은 용훈에게 친구가 성폭력피해 상담가인 영서씨를 소개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렇고, 읽고 나서도 그렇고 머리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고민했고, 결국 마주하기로 했죠.” 용훈은 책을 읽은 후 여성인권상담소에서 디지털 성폭력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며 폭력 예방을 위해 나름의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가 더 이상 숨지 않고, 가해자들에게 온전히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경찰인재개발원에서 현장 경찰관들을 교육하는 고지연 경찰교육원 교수는 처음에는 공부를 하려고 영서 작가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형사로서 15년간 사건 현장에 있었지만 피해자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 사건 처리를 잘 하고도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있어요. 그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고 교수는 현장 경찰관들에게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읽고 서평을 쓰라는 과제를 주기도 한다. “가정폭력이나 친밀한 관계 안에서의 폭력은 굉장히 오랫동안 침윤이 되기 때문에 밖에서 (사건을) 보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왜 저렇게 대응을 못 하지?’ ‘가출하면 되지 않아?’ ‘아니, 엄마는 뭐 했어?’ (피해자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책에서 제대로 보여주는 정수는 ‘나는 점점 그렇게 물건이 되어 갔다’는 문장이었어요.”
성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으려면[플랫]
“나는 지금 살아 있지 않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물건이다. 나는 영서가 아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순간에는.”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중에서
안전한 장소. 경찰 신고. 신분증과 신용카드, 통장 그리고 갈아입을 옷. 비상금.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는 이 4가지 항목을 확보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막상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준비하기 쉽지 않다. 영서씨는 “집을 나올 때 신분증, 통장, 도장, 2만 원 정도의 현금을 들고 나왔지만 갈아입을 옷도 없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피해자에게) 안전한 장소가 있을까 싶지만 사실 가해자가 없는, 가해자와 분리되면 모든 공간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고 했다.
가족 내 폭력과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현행법은 법원의 임시조치로만 분리가 가능하다. 현장에서 경찰이 직접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긴급임시조치가 마련돼 있으나 가정폭력특례법에 따르면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하더라도 과태료 처분에 그쳐 범행 재발의 우려가 높다는 지적을 받는다.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은 전국에 66개소(2019년 1월 기준)가 있지만 임시 쉼터의 경우 최대 3일까지 머물 수 있는 정도다. 자립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사업 운영실적 조사에 따르면 보호시설 이용자 1900명 중 714명인 37.6%는 쉼터 퇴소와 함께 다시 원가정으로 복귀한다. 여성 폭력 피해자에 대한 주거지원은 전국에 314호가 있으나, 주거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은 자는 매년 불과 1~2명으로 극히 일부에게만 제공되고 있다. 고 교수는 “가해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보호가 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폭력 피해자들 중에 용기 내서 가출을 했는데, 안 좋은 사람만 계속 만났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인식을 주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계속 늘어나는 것. 그 역할을 우리가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폭력의 경험을 툭하고 털어놓아도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놀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김영서)
“코로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일 거예요. 나만 잘 살아서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요. 이 사람(피해자)이 안전하고, 살 수 있어야 나 또한 안전하다는 것일 겁니다.”(고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