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성추행 사실)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아빠 감방 간다"(A양 아버지)
"이거(성추행 사실)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아빠 감방 간다"(A양 아버지)
"네가 말 한마디만 좋게 해주면 아빠가 구속 안 되어도 되지 않냐"(A양 어머니)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세 차례 친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A(16)양이 가족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A양은 2018년 4월 수사과정에서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상담센터에 털어놓았다.
A양의 진술을 기반으로 세 차례 추행과 세 차례 폭언 사실이 특정된 A양의 아버지 B(45)씨.
B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및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법정에 증인으로 선 피해자 A양은 “아빠가 미워 거짓으로 한 진술”이라며 돌연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1심에서 B씨는 폭언을 일삼았다는 아동학대 혐의만 유죄로 인정받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A양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A양이 진술한 첫 강제추행은 A양이 9살에서 10살 때쯤이었다.
집에서 아빠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이후 13살 때까지 추행은 수차례 더 이뤄졌다.
딸에게 “안마를 해달라” “맥주를 가져와라”라고 심부름을 시킨 뒤 추행이 따랐다. A양이 친구와 상담 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했고 수사로 이어졌다.
그런데 1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A양은 “피해 사실이 없다”고 피해 진술을 번복했다.
자신의 진술이 거짓이었다는 진술서도 법원에 냈다.
다른 A양의 가족들도 법정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A양의 어머니는 “남편이 딸에게 자주 욕설은 했지만, 평소 성향이나 두 사람의 관계에 비춰볼 때 그런 범행을 할 사람은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B씨도 수사기관부터 법정까지 강력하게 추행을 부인했다.
1심 재판부(당시 수원지법 여주지원)는 “이 사건의 유일한 직접 증거인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고,
검사가 나머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B씨는 딸에 대한 성범죄 부분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당시 서울고법 형사10부)은 A양의 진술을 처음부터 다시 따졌다.
먼저 항소심은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과 법정에서 증언이 다를 경우 반드시 후자를 믿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통상 형사소송에서는 수사기관의 진술보다 법정에서 판사가 직접 심리한 진술에 더 무게를 둔다.
항소심은 “수사기관 진술과 법정 진술이 다를 때 진술이 번복된 경위나 이해관계 여부를 고려해 법정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면 진술 번복만을 이유로 수사기관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판례도 덧붙였다.
항소심이 보기에 A양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A양은 수사기관에서 "아빠가 '이거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지 마라,
아빠 감방 간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또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 이게 성폭력인 걸 알았다,
뭔가 몸을 더럽히는 것 같고 수치스러워 울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피해를 친구에게 말한 뒤 “신고하라”는 친구의 권유에는 “주변 사람들이 아빠 신고한 애라고 할 것 같고,
아빠가 때리거나 보복할까 봐 신고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항소심은 “A양은 범행 당시 상황과 당시 느낀 감정을 직접 표현하고 있다”며
A양의 수사기관 진술이 법정에서 번복됐다고 그 신빙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B씨는 “딸의 수사과정 영상을 보면 4번이나 웃는다”며 딸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는 A양을 도와준 전문가들의 증언도 B씨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됐다.
1심에서는 A양의 처음 피해 진술 외에 다른 모든 가족 및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했었다.
A양이 1심 법원에서 진술을 뒤집은 이후, A양을 만난 의사는 그때 들은 이야기를 2심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 의사에 따르면 A양은 “엄마가 내게 ‘성폭행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가족들이 눈치를 많이 주고, 할머니는 ‘아빠를 빨리 꺼내야 한다’고 욕했다”고 털어놨다.
항소심은 이런 점을 종합해서 볼 때 A양이 법정에서 피해 진술을 번복했다 하더라도
그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는 없다고 봤다.
2심은 B씨의 모든 성범죄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명했다.
대법원은 항소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친족 관계에서 성범죄를 당한 미성년자 피해자의 경우 피고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거나 가족들의 회유와 협박이 이어질 수 있다.
대법원은 이런 이유로 진술이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수 있는 특수성까지 법원이 충분히 심리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B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형을 확정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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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성추행 사실)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아빠 감방 간다"(A양 아버지)
"네가 말 한마디만 좋게 해주면 아빠가 구속 안 되어도 되지 않냐"(A양 어머니)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세 차례 친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A(16)양이 가족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A양은 2018년 4월 수사과정에서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상담센터에 털어놓았다.
A양의 진술을 기반으로 세 차례 추행과 세 차례 폭언 사실이 특정된 A양의 아버지 B(45)씨.
B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및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법정에 증인으로 선 피해자 A양은 “아빠가 미워 거짓으로 한 진술”이라며 돌연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1심에서 B씨는 폭언을 일삼았다는 아동학대 혐의만 유죄로 인정받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A양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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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성폭력 증거 불충분, ‘무죄’"
A양이 진술한 첫 강제추행은 A양이 9살에서 10살 때쯤이었다.
집에서 아빠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이후 13살 때까지 추행은 수차례 더 이뤄졌다.
딸에게 “안마를 해달라” “맥주를 가져와라”라고 심부름을 시킨 뒤 추행이 따랐다. A양이 친구와 상담 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했고 수사로 이어졌다.
그런데 1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A양은 “피해 사실이 없다”고 피해 진술을 번복했다.
자신의 진술이 거짓이었다는 진술서도 법원에 냈다.
다른 A양의 가족들도 법정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A양의 어머니는 “남편이 딸에게 자주 욕설은 했지만, 평소 성향이나 두 사람의 관계에 비춰볼 때 그런 범행을 할 사람은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B씨도 수사기관부터 법정까지 강력하게 추행을 부인했다.
1심 재판부(당시 수원지법 여주지원)는 “이 사건의 유일한 직접 증거인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고,
검사가 나머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B씨는 딸에 대한 성범죄 부분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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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A양 증언, 구체적이고 상황 꾸며내지 않아”
항소심(당시 서울고법 형사10부)은 A양의 진술을 처음부터 다시 따졌다.
먼저 항소심은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과 법정에서 증언이 다를 경우 반드시 후자를 믿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통상 형사소송에서는 수사기관의 진술보다 법정에서 판사가 직접 심리한 진술에 더 무게를 둔다.
항소심은 “수사기관 진술과 법정 진술이 다를 때 진술이 번복된 경위나 이해관계 여부를 고려해 법정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면 진술 번복만을 이유로 수사기관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판례도 덧붙였다.
항소심이 보기에 A양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A양은 수사기관에서 "아빠가 '이거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지 마라,
아빠 감방 간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또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 이게 성폭력인 걸 알았다,
뭔가 몸을 더럽히는 것 같고 수치스러워 울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피해를 친구에게 말한 뒤 “신고하라”는 친구의 권유에는 “주변 사람들이 아빠 신고한 애라고 할 것 같고,
아빠가 때리거나 보복할까 봐 신고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항소심은 “A양은 범행 당시 상황과 당시 느낀 감정을 직접 표현하고 있다”며
A양의 수사기관 진술이 법정에서 번복됐다고 그 신빙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B씨는 “딸의 수사과정 영상을 보면 4번이나 웃는다”며 딸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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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준 가족들, 증언한 주변인들
항소심에서는 A양을 도와준 전문가들의 증언도 B씨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됐다.
1심에서는 A양의 처음 피해 진술 외에 다른 모든 가족 및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했었다.
A양이 1심 법원에서 진술을 뒤집은 이후, A양을 만난 의사는 그때 들은 이야기를 2심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 의사에 따르면 A양은 “엄마가 내게 ‘성폭행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가족들이 눈치를 많이 주고, 할머니는 ‘아빠를 빨리 꺼내야 한다’고 욕했다”고 털어놨다.
항소심은 이런 점을 종합해서 볼 때 A양이 법정에서 피해 진술을 번복했다 하더라도
그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는 없다고 봤다.
2심은 B씨의 모든 성범죄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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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친족 성범죄 미성년자 피해자 진술 특수성 이해해야 ”
대법원은 항소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친족 관계에서 성범죄를 당한 미성년자 피해자의 경우 피고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거나 가족들의 회유와 협박이 이어질 수 있다.
대법원은 이런 이유로 진술이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수 있는 특수성까지 법원이 충분히 심리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B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형을 확정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