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지적장애 성폭력 피해자 신혜영을 내가 지원했다면

uuu 22-08-19 11:39 64 1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을 다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
드라마에서 생략된 법적‧제도적 지원들

2000년대 초반, 지역사회에서 지적장애여성이 7년간 성폭력을 겪은 사건이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그전까지 장애인시설에서 지적장애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건이 종종 언론에 보도된 적은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지적장애여성을 대상으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공개된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당시 김대중 정부는 2001년 여성부를 신설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민간 성폭력상담소의 운영비 일부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는 1994년에 제정된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정부가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7년간 지역사회에서 성폭력피해를 입은 지적장애여성 사건은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특화된 상담소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져 전국적으로 10여 개의 장애인성폭력상담소가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20여 개 넘는 장애인성폭력상담소가 전국에서 장애인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반성폭력운동 진영에서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 개정 및 지원절차에 대한 활동을 지속해서 해오고 있다. 그래서 20년 전 사건이 발생했을 때보다 현재는 제도적으로도 많이 변했다.
나는 지난 20여 년간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10화를 보면서 많은 법적‧제도적 변화를 느꼈고, 사회적으로 함께 논의해 볼 쟁점도 있었다.

10화에서 비장애남성 양정일은 발달장애인(발달장애는 자폐성 장애와 지적장애를 통칭하는 용어다) 온라인 모임카페에 가입해서 지적장애여성 신혜영에게 접근한다. 이후 알콩달콩앱(일대일 데이트앱)에서 채팅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신혜영 명의의 카드를 발급받아 과도한 데이트 비용을 사용하고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 양정일은 “착하고 순수한 장애인” 신혜영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이는 합의된 성관계라고 주장하는 반면, 신혜영 측은 이를 성폭력으로 신고했다. 드라마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최초로 인지한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신고를 한 것인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가족(주로 부모)이 인지해서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렇게 신고된 사건은 수사와 재판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
-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보호자를 분리해야 하는 이유

드라마에서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기소에 대한 과정이 생략된 채 재판 과정만 나왔지만,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은 수사 과정이 중요하다.

만약 신혜영과 신혜영 어머니가 장애인성폭력상담소를 방문해서 지원을 요청했다면 나는 어떤 상담과 지원을 했을까. 우선 피해자를 지원하는 상담원은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인들에게 수사와 재판의 모든 절차에서 보장된 피해자 권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각 절차에 따라 경찰, 검찰, 재판부, 피해자 변호사, 진술분석가, 진술조력인 등의 사람들과 적절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며, 피해자의 장애상태에 따른 특성을 비롯해 피해자의 사회환경적 특성 등을 의견으로 제시하는 일을 주로 한다.

우선 피해자와 피해자의 어머니는 분리해서 상담해야 한다. 이유는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진술하는 ‘자연진술’ 혹은 ‘경험언어’를 경청하기 위해서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지적장애여성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관계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맥락을 살펴보면 지적장애인은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가 높으나 대체로 일상에서 타인과 친밀한 관계 맺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주변 지원자들(교사, 사회복지사, 활동지원사 등)은 지적장애의 특성상 타인에게 쉽게 이용당하고 나아가 폭력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보호를 위한 통제’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신혜영 어머니는 우영우 변호사에게 “거지 같은 세상에서 내 딸(신혜영)을 지켜야 한다. 순진하고 만만하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돈, 마음을 다 뽑아 먹으려는 나쁜 새끼들한테서 우리 애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라고 소리치며 그게 ‘엄마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많은 상담 과정에서 보호자(대체로 어머니)는 자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자기 자녀를 통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피해자와 일대일로 상담을 하다보면 오히려 이러한 통제된 삶의 공간에서 갑자기 혹은 우연히 나타난 사람이 ‘예쁘다’ ‘좋다’ ‘데이트하자’ 등의 이것저것 청유형의 말을 하면 평소에 통제어에 익숙한 피해자는 쉽게 유인되고 친밀한 관계를 기대하게 되는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사건을 상담하거나 지원할 때 참 어렵다. 그래서 사건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가해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가해자의 처벌조항을 살펴봐야 한다.

- 피해자의 항거불능 대신 위력 관계를 주장했다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래 성폭력처벌법) 제6조는 장애인에 대한 강간 및 강제추행에 대한 처벌조항이다. 1항부터 7항까지 구성되어 있고, 1항은 장애인을 폭행이나 협박을 이용하여 강간한 경우, 2항은 폭행이나 협박을 이용하여 유사강간한 경우, 3항은 장애인을 폭행이나 협박을 이용하여 강제추행한 경우, 4항은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혹은 항거곤란한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강간하거나 추행한 경우, 5항은 위계 또는 위력을 이용하여 장애인을 강간한 경우, 6항은 위계 또는 위력을 이용하여 장애인을 추행한 경우, 7항은 장애인 보호·교육·감독하는 사람이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한 경우에는 가중처벌이 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에서는 양정일에게 4항을 적용해서 신혜영의 지적장애가 항거불능 상태였고 이를 가해자가 이용하여 강간했다는 취지로 공소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정일이 신혜영의 장애상태를 이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비장애인으로 발달장애인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여 자원봉사를 하는 위치에서 오는 위력을 작동하여 피해자를 종속시킨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신혜영의 지적장애가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의 상태라고 입증하기 위해 법정에서 전문가는 신혜영이 경도의 지적장애로 인해 상황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취지의 증언을 강조한다.

그러나 만약 5항을 적용하면 오히려 양정일이 신혜영과의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위력 관계를 행사했다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신혜영의 태도와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신혜영이 장애로 인해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발달장애인 모임카페에서 알고 있었던 양정일은 그 취약성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법정에서 전문가는 신혜영의 장애 자체에 대한 무능력함보다 장애로 인해 차별적인 사회환경이 관계의 취약성을 만들고 그것이 권력관계를 형성한다는 취지로 의견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장애의 정도에 따라 조항의 적용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신혜영처럼 일상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도의 지적장애의 경우에는 사회적 편견이나 환경으로 인해 종속적인 관계를 맺기 쉽다. 아마도 내가 이 사건 지원자로서 의견을 낸다면 이러한 부분을 강조했을 것이다.
- 법정에 서기 전, 피해자가 만나는 사람들

이후 피해자 신혜영은 어떤 절차를 거쳐 법정에서 증언까지 하게 되었을까?

지적장애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은 해바라기센터(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 진술녹화실에서 처음으로 피해 진술을 한다. 이때 피해자가 만나게 될 사람이 꽤 많다. 성폭력처벌법에 근거해 피해자 변호사, 신뢰관계인, 진술조력인, 진술분석가, 여성경찰, 사건 담당경찰, 피해자의 보호자(가족, 지원자 등) 등인데, 적어도 5명은 된다.

피해자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법률조력을 하는 변호사로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대리하는 법률적 행위를 한다. 신뢰관계인은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반드시 동석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진술조력인은 아동이나 장애인 피해자의 의사소통을 조력한다. 진술분석가는 피해자의 진술을 분석하여 신빙성여부에 대한 의견을 수사기관에 제출한다.

이 중에서도 진술조력인 제도는 피해자의 의사소통을 중개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재 양성된 진술조력인의 경우, 13세 미만 아동 피해자 전문 분야에 계신 분들은 많지만 발달장애인 의사소통 조력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계신 분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법무부가 진술조력인 양성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발달장애의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발달장애인을 만나고 소통하는 경험이 꼭 필요한데, 양성과정에 이러한 부분이 어느 정도 고려되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피해자 경찰 진술이 끝나면, 검사는 별다른 쟁점이 없는 경우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검사 기소가 되면 이제 재판 열리는 것을 기다리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피해자 변호사는 절차적으로 조력하고 법률적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 법정에 선 피해자,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드라마에서 나오는 재판 장면은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시작되는 절차이다. 드라마에서는 드라마적 요소 때문에 절차를 생략했겠지만, 피해자가 어머니와 함께 방청하는 장면이나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하는 장면에서도 누락된 절차가 있다.

피해자와 어머니는 당연히 방청할 수 있다. 이 재판은 형사재판인데, 형사재판은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를 다투는 것이 중심이라 정작 피해자는 제삼자나 마찬가지여서 법정에서 피고인의 주장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피해자나 피해자 변호사가 가능한 방청을 해서 재판 상황에 따라 의견서나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피해자가 방청하는 목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알 수 없고, 단지 피해자의 장애상태와 어머니의 분노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이러한 방청은 피해자가 어머니의 분노에 위축되기도 하고 피고인의 눈치를 보거나 두려운 감정을 가지게 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피해자가 방청할 경우에는 방청 목적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소통하고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감정적 일체감으로 이 사건 피해자가 신혜영인지 어머니인지 알 수 없고 오히려 어머니에게 종속된 신혜영만 보이는 것이 불편했다. 이런 경우에는 피해자 변호사가 법정에 출석하여 피해자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적절하다.
피해자 신혜영이 재판 방청을 하고 난 후에, 우영우 변호사에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말해주고 우영우 변호사와 만나는 장면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방향을 보면서 서로가 묻고 답한다. 적어도 내가 만나 본 자폐스펙트럼 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은 서로 간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서 매우 주체적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신혜영이 성폭력이 아니라며 양정일이 감옥 가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에 우영우 변호사는 법정 증인출석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장애여성 두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소통하고 있고 이 소통은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피고인 변호사의 요청으로 증인출석을 할 경우, 대체로 법정에서는 피해자의 출석보다 진술녹화 영상에 대한 진정성립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증인으로, 그것도 방청석에서 바로 증인으로 출석하는데 보통 피해자가 증인출석을 할 때는 피고인과 마주치지 않게 증인지원관실에서 대기하다가 증인석으로 출석한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피해자가 방청석에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 퇴정을 결정하는데, 현장에서는 피해자가 법정에 들어오기 전에 피고인 퇴정조치를 비롯해 비디오장치에 의한 증언을 할지, 가림막 설치가 필요한지 등을 결정한다. 이런 모든 조치는 법정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전에 섬세하게 진행해야 한다.

피해자가 증인석에 착석하고 나면 뒤편에 신뢰관계인이 동석한다.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조치이다. 이처럼 법정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영향을 최대한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증언하기 위한 준비는 무척 중요하다. 그러면 드라마에서처럼 피해자가 증언 도중 어머니에게 가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 개인의 착한 마음에 기대지 않으려면

드라마이기 때문에 절차적인 부분을 대체로 생략하고 핵심적으로 피고인 퇴정 조치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법원에서 발송한 증인소환장의 의미부터 법정 증언까지 피해자에게 하나하나 설명하고 법원에 피해자 보호조치를 촘촘하게 요청한다. 그래야 지적장애피해자가 절차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은 누군가에게 위임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그 속도를 기다리고 그에 맞는 정보제공과 교육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환경을 만들고 비(非)발달장애인의 인식이 변하는 것이 발달장애인의 변화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우영우 변호사에겐 편견 없이 신뢰 관계를 맺고 있는 동그라미 같은 친구가 있고, ‘봄날의 햇살’ 같은 동료가 있고, 관계의 속도를 기다릴 줄 아는 준호가 있다. 동그라미, 최수연, 이준호와 같은 개인들의 착한 마음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동그라미, 최수연, 이준호가 있으려면 장애학생이 다니는 통합학급 교실에서부터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 교육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나아가 발달장애인이 전 생애적으로 겪는 차별과 폭력을 없애기 위한 국가의 책임 있는 정책을 비롯해 공동체 또한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 지구촌가족성폭력상담소 () 답변

    이 과정에서 7년간 지역사회에서 성폭력피해를 입은 지적장애여성 사건은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특화된 상담소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져 전국적으로 10여 개의 장애인성폭력상담소가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20여 개 넘는 장애인성폭력상담소가 전국에서 장애인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반성폭력운동 진영에서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 개정 및 지원절차에 대한 활동을 지속해서 해오고 있다. 그래서 20년 전 사건이 발생했을 때보다 현재는 제도적으로도 많이 변했다.
    나는 지난 20여 년간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10화를 보면서 많은 법적‧제도적 변화를 느꼈고, 사회적으로 함께 논의해 볼 쟁점도 있었다.

    10화에서 비장애남성 양정일은 발달장애인(발달장애는 자폐성 장애와 지적장애를 통칭하는 용어다) 온라인 모임카페에 가입해서 지적장애여성 신혜영에게 접근한다. 이후 알콩달콩앱(일대일 데이트앱)에서 채팅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신혜영 명의의 카드를 발급받아 과도한 데이트 비용을 사용하고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 양정일은 “착하고 순수한 장애인” 신혜영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이는 합의된 성관계라고 주장하는 반면, 신혜영 측은 이를 성폭력으로 신고했다. 드라마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최초로 인지한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신고를 한 것인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가족(주로 부모)이 인지해서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렇게 신고된 사건은 수사와 재판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
    -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보호자를 분리해야 하는 이유

    드라마에서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기소에 대한 과정이 생략된 채 재판 과정만 나왔지만,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은 수사 과정이 중요하다.

    만약 신혜영과 신혜영 어머니가 장애인성폭력상담소를 방문해서 지원을 요청했다면 나는 어떤 상담과 지원을 했을까. 우선 피해자를 지원하는 상담원은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인들에게 수사와 재판의 모든 절차에서 보장된 피해자 권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각 절차에 따라 경찰, 검찰, 재판부, 피해자 변호사, 진술분석가, 진술조력인 등의 사람들과 적절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며, 피해자의 장애상태에 따른 특성을 비롯해 피해자의 사회환경적 특성 등을 의견으로 제시하는 일을 주로 한다.

    우선 피해자와 피해자의 어머니는 분리해서 상담해야 한다. 이유는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진술하는 ‘자연진술’ 혹은 ‘경험언어’를 경청하기 위해서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지적장애여성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관계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맥락을 살펴보면 지적장애인은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가 높으나 대체로 일상에서 타인과 친밀한 관계 맺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주변 지원자들(교사, 사회복지사, 활동지원사 등)은 지적장애의 특성상 타인에게 쉽게 이용당하고 나아가 폭력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보호를 위한 통제’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신혜영 어머니는 우영우 변호사에게 “거지 같은 세상에서 내 딸(신혜영)을 지켜야 한다. 순진하고 만만하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돈, 마음을 다 뽑아 먹으려는 나쁜 새끼들한테서 우리 애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라고 소리치며 그게 ‘엄마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많은 상담 과정에서 보호자(대체로 어머니)는 자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자기 자녀를 통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피해자와 일대일로 상담을 하다보면 오히려 이러한 통제된 삶의 공간에서 갑자기 혹은 우연히 나타난 사람이 ‘예쁘다’ ‘좋다’ ‘데이트하자’ 등의 이것저것 청유형의 말을 하면 평소에 통제어에 익숙한 피해자는 쉽게 유인되고 친밀한 관계를 기대하게 되는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사건을 상담하거나 지원할 때 참 어렵다. 그래서 사건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가해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가해자의 처벌조항을 살펴봐야 한다.

    - 피해자의 항거불능 대신 위력 관계를 주장했다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래 성폭력처벌법) 제6조는 장애인에 대한 강간 및 강제추행에 대한 처벌조항이다. 1항부터 7항까지 구성되어 있고, 1항은 장애인을 폭행이나 협박을 이용하여 강간한 경우, 2항은 폭행이나 협박을 이용하여 유사강간한 경우, 3항은 장애인을 폭행이나 협박을 이용하여 강제추행한 경우, 4항은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혹은 항거곤란한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강간하거나 추행한 경우, 5항은 위계 또는 위력을 이용하여 장애인을 강간한 경우, 6항은 위계 또는 위력을 이용하여 장애인을 추행한 경우, 7항은 장애인 보호·교육·감독하는 사람이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한 경우에는 가중처벌이 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에서는 양정일에게 4항을 적용해서 신혜영의 지적장애가 항거불능 상태였고 이를 가해자가 이용하여 강간했다는 취지로 공소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정일이 신혜영의 장애상태를 이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비장애인으로 발달장애인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여 자원봉사를 하는 위치에서 오는 위력을 작동하여 피해자를 종속시킨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신혜영의 지적장애가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의 상태라고 입증하기 위해 법정에서 전문가는 신혜영이 경도의 지적장애로 인해 상황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취지의 증언을 강조한다.

    그러나 만약 5항을 적용하면 오히려 양정일이 신혜영과의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위력 관계를 행사했다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신혜영의 태도와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신혜영이 장애로 인해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발달장애인 모임카페에서 알고 있었던 양정일은 그 취약성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법정에서 전문가는 신혜영의 장애 자체에 대한 무능력함보다 장애로 인해 차별적인 사회환경이 관계의 취약성을 만들고 그것이 권력관계를 형성한다는 취지로 의견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장애의 정도에 따라 조항의 적용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신혜영처럼 일상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도의 지적장애의 경우에는 사회적 편견이나 환경으로 인해 종속적인 관계를 맺기 쉽다. 아마도 내가 이 사건 지원자로서 의견을 낸다면 이러한 부분을 강조했을 것이다.
    - 법정에 서기 전, 피해자가 만나는 사람들

    이후 피해자 신혜영은 어떤 절차를 거쳐 법정에서 증언까지 하게 되었을까?

    지적장애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은 해바라기센터(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 진술녹화실에서 처음으로 피해 진술을 한다. 이때 피해자가 만나게 될 사람이 꽤 많다. 성폭력처벌법에 근거해 피해자 변호사, 신뢰관계인, 진술조력인, 진술분석가, 여성경찰, 사건 담당경찰, 피해자의 보호자(가족, 지원자 등) 등인데, 적어도 5명은 된다.

    피해자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법률조력을 하는 변호사로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대리하는 법률적 행위를 한다. 신뢰관계인은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반드시 동석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진술조력인은 아동이나 장애인 피해자의 의사소통을 조력한다. 진술분석가는 피해자의 진술을 분석하여 신빙성여부에 대한 의견을 수사기관에 제출한다.

    이 중에서도 진술조력인 제도는 피해자의 의사소통을 중개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재 양성된 진술조력인의 경우, 13세 미만 아동 피해자 전문 분야에 계신 분들은 많지만 발달장애인 의사소통 조력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계신 분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법무부가 진술조력인 양성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발달장애의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발달장애인을 만나고 소통하는 경험이 꼭 필요한데, 양성과정에 이러한 부분이 어느 정도 고려되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피해자 경찰 진술이 끝나면, 검사는 별다른 쟁점이 없는 경우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검사 기소가 되면 이제 재판 열리는 것을 기다리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피해자 변호사는 절차적으로 조력하고 법률적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 법정에 선 피해자,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드라마에서 나오는 재판 장면은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시작되는 절차이다. 드라마에서는 드라마적 요소 때문에 절차를 생략했겠지만, 피해자가 어머니와 함께 방청하는 장면이나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하는 장면에서도 누락된 절차가 있다.

    피해자와 어머니는 당연히 방청할 수 있다. 이 재판은 형사재판인데, 형사재판은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를 다투는 것이 중심이라 정작 피해자는 제삼자나 마찬가지여서 법정에서 피고인의 주장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피해자나 피해자 변호사가 가능한 방청을 해서 재판 상황에 따라 의견서나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피해자가 방청하는 목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알 수 없고, 단지 피해자의 장애상태와 어머니의 분노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이러한 방청은 피해자가 어머니의 분노에 위축되기도 하고 피고인의 눈치를 보거나 두려운 감정을 가지게 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피해자가 방청할 경우에는 방청 목적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소통하고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감정적 일체감으로 이 사건 피해자가 신혜영인지 어머니인지 알 수 없고 오히려 어머니에게 종속된 신혜영만 보이는 것이 불편했다. 이런 경우에는 피해자 변호사가 법정에 출석하여 피해자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적절하다.
    피해자 신혜영이 재판 방청을 하고 난 후에, 우영우 변호사에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말해주고 우영우 변호사와 만나는 장면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방향을 보면서 서로가 묻고 답한다. 적어도 내가 만나 본 자폐스펙트럼 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은 서로 간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서 매우 주체적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신혜영이 성폭력이 아니라며 양정일이 감옥 가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에 우영우 변호사는 법정 증인출석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장애여성 두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소통하고 있고 이 소통은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피고인 변호사의 요청으로 증인출석을 할 경우, 대체로 법정에서는 피해자의 출석보다 진술녹화 영상에 대한 진정성립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증인으로, 그것도 방청석에서 바로 증인으로 출석하는데 보통 피해자가 증인출석을 할 때는 피고인과 마주치지 않게 증인지원관실에서 대기하다가 증인석으로 출석한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피해자가 방청석에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 퇴정을 결정하는데, 현장에서는 피해자가 법정에 들어오기 전에 피고인 퇴정조치를 비롯해 비디오장치에 의한 증언을 할지, 가림막 설치가 필요한지 등을 결정한다. 이런 모든 조치는 법정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전에 섬세하게 진행해야 한다.

    피해자가 증인석에 착석하고 나면 뒤편에 신뢰관계인이 동석한다.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조치이다. 이처럼 법정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영향을 최대한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증언하기 위한 준비는 무척 중요하다. 그러면 드라마에서처럼 피해자가 증언 도중 어머니에게 가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 개인의 착한 마음에 기대지 않으려면

    드라마이기 때문에 절차적인 부분을 대체로 생략하고 핵심적으로 피고인 퇴정 조치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법원에서 발송한 증인소환장의 의미부터 법정 증언까지 피해자에게 하나하나 설명하고 법원에 피해자 보호조치를 촘촘하게 요청한다. 그래야 지적장애피해자가 절차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은 누군가에게 위임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그 속도를 기다리고 그에 맞는 정보제공과 교육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환경을 만들고 비(非)발달장애인의 인식이 변하는 것이 발달장애인의 변화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우영우 변호사에겐 편견 없이 신뢰 관계를 맺고 있는 동그라미 같은 친구가 있고, ‘봄날의 햇살’ 같은 동료가 있고, 관계의 속도를 기다릴 줄 아는 준호가 있다. 동그라미, 최수연, 이준호와 같은 개인들의 착한 마음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동그라미, 최수연, 이준호가 있으려면 장애학생이 다니는 통합학급 교실에서부터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 교육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나아가 발달장애인이 전 생애적으로 겪는 차별과 폭력을 없애기 위한 국가의 책임 있는 정책을 비롯해 공동체 또한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총신가정폭력상담소,지구촌가족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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